| 얼마 전에 여자친구와 미용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에스콰이어라는 잡지를 본 적이 있었다. 몇 번 본 적이 있는 남성 잡지였는데 '쉬크하다'라는 처음 보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무슨 패션 용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같은 날, 여자친구가 어머님 선물을 사러 갤러리아 백화점 숙녀복 코너에 들렀다. 여자친구가 옷을 고르는 동안 한가로이 앉아 있다가 역시나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갤러리아 매거진'을 집어 들었는데, 여기서도 '쉬크하다'는 표현을 찾을 수 있었다. 의문은 깊어만 갔다.
며칠 전, 친구들과 강남에서 만났다가 서점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다. 친구 하나랑 패션 잡지를 뒤적뒤적 거렸는데, 이럴 수가, 잡지들이 온통 쉬크하다는 표현으로 뒤덮여 있었다. 이 옷은 어쩌고 저쩌고 쉬크하다. 이 가방은 어쩌고 저쩌고 쉬크하다. 쉬크한 옷. 쉬크한 가방. 쉬크한 그녀. 젠장, 도대체 쉬크한 게 뭐야?
집에 돌아온 나는 자신의 무지를 탓하며 네이버 검색창에 쉬크하다를 쳐넣었다. 검색 결과 맨 처음에 뜨는 블로그 글의 제목이 '쉬크한 장만옥 (쉬크하다는 게 어떤 건진 잘 모르겠지만)'이다. 쉬크함에 대한 미스테리는 커져만 간다. 검색 결과도 패션 잡지와 다를 바 없이 이 가방은 쉬크하다, 그녀는 쉬크하다 따위의 말만 늘어놓더니, 아래 쪽에 가서야 내가 원하던 답을 슬쩍 흘린다.
(전략) 예를 들어 은회색 원 버튼 수트에 흰색 셔츠와 단색톤의 타이를 매치하면 쉬크(chic)하고 포멀한 연출이 가하다. (후략)
아하, 쉬크가 chic 였군! 재빨리 chic을 검색해 봤다.
그럼 쉬크하다는 독특한 스타일 혹은 멋을 풍긴다. 고상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유행에 잘 부합하는 현대적 스타일이다. 복장이 우아하다. 세련되다. 맵시있다. 정도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건데. 그럼 그냥 저런 표현을 사용하면 될 일이지 굳이 '쉬크하다' 따위의 국적불명의 언어를 만들어 잡지 곳곳에 흩뿌려 놓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게다가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전략) 그 종류만도 백가지나 되기 때문에 결국 힙(hip)하고 쉬크(Chic)한 사교장의 백미는 마티니다. 첼시의 현재 첼시는 다양하다. (후략)
'힙하다'는 또 뭡니까. 잠깐 엉덩이하다, 라는 단어를 떠올렸다가, 쓴 웃음만 짓고 다시 네이버의 힘을 빌렸다. hip5 《속어》 a.
1 (최신 유행의) 사정에 밝은, 앞서 있는
2 세상 물정에 밝은, 통달한, 잘 알고 있는
3 동의한, 일치한
4 히피의
be hip to …을 잘 알고 있다
━ n. =HIPNESS
━ vt. (hipped;hip·ping) 알리다, 전수[설명]하다
hip·ly ad. 결국 쉬크하다나 힙하다나 거기서 거기구만. 뉘앙스의 차이는 있겠지만, 쉬크하건 힙하건, 결국 요새 유행을 잘 따르는 최첨단 패션리더라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인 모양이다. 아무튼 결론으로 들어가자면...
쉬크하다, 힙하다, 이런 표현을 안 쓰면 간지가 안 나는 모양이죠?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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