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제게 가장 싫어하는 영화 장르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전 아무 망설임 없이 '로맨틱 코미디' 라고 대답할 겁니다. 질문이 떨어지고 제 입에서 저 대답이 나오는데는 0.1 초의 딜레이도 없을 거에요. 그만큼 로맨틱 코미디는 제 영화 취향에서 정말 많이 벗어나 있는 영화입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볼 바에는 이미 본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니 말 다했죠.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본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호감도를 대폭 올려 놓았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영화의 제목은 노팅 힐이고요. 영화를 보는 내내 평범한 남자와 세계적인 여배우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사랑에 빠져 온갖 좌절과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엔딩에 다다르는, 정말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데다 뻔하면서도 진부한 이야기를 이렇게 흡입력있게 늘어놓을 수 있다는 게 무척 놀라웠습니다.
제가 로맨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저런 점이에요. 설정은 말도 안되고, 전개는 뻔하고, 이야기는 진부하고. 사실 노팅 힐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크게 다를 바 없어요. 아무리 사랑이 갑자기 찾아온다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너무 갑작스럽죠. 게다가 영화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란 일반인과 대스타가 사귄다고 할 때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들 뿐이잖아요. 몰래 데이트하고, 주변 사람들은 놀라서 기겁하고, 결국 언론에 들켜서 대박 스캔들 터지고. 거기다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어지는 뻔뻔한 해피 엔딩. 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노팅 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유머 넘치는 대사 플러스 상황 설정 때문이었어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듯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저게 무슨 소린지 다 아실테고, 못 본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정말 뻔한 이야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꾸미고 포장하는 건 보통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겠죠. 괜히 워킹 타이틀이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 소리를 듣고, 괜히 리차드 커티스가 로맨틱 코미디의 귀재 소리를 듣는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러브 액츄얼리를 볼까 말까 하다 말았었는데, DVD라도 빌려다 봐야겠어요. :)
Post Script.
아는 친구가 이 영화 보고 너무 감명 받아서 유럽 여행 중에 짬을 내서 노팅 힐에 들리기까지 했다는데, 정말 별 것 없는 심심한 동네라더군요. 그래도 한 번 가보고 싶긴 하네요. 그럴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다는 게 문제지만;
Post Script 2.
하지만 전 여전히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싫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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