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침대에 엎드려 거친 숨을 내뱉었다. 땀과 타액으로 범벅이 된 가슴이 두꺼운 솜이불에 닿았다. 맨살에 축축한 직물이 달라붙는 감촉이 기분 나빠 엎드린 채로 상체를 일으켰다. 허리에 아련한 통증이 왔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 습기를 가득 머금은 온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찝찝함을 떨쳐내듯 눈을 감았다 떴다. 어두운 실내. 벽에 붙은 키홀더가 흘리는 어슴푸레한 빛이 겨우 사물의 윤곽을 잡아주었다.
나는 두 팔로 침대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무로 된 인형처럼 관절이 삐걱거렸다. 허리 아래만 움직여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렸다.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발 끝에 슬리퍼가 닿았다. 팔에 힘을 주고 침대에 걸터앉아 슬리퍼를 찾아 신었다. 바닥에는 속옷이며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나는 속옷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가벗은 몸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있는지 커튼 끝자락이 둔하게 펄럭거렸다. 나는 바닥에서 나이트가운을 집어 들었다.
- 일어났군.
나이트가운을 몸에 걸치고 나서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흔들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회색정장차림이었다. 검은 에나멜 구두까지 신은 그의 옷차림은 오늘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검은색 유리로 된 재떨이에 왼손에 들고 있던 담뱃재를 떨었다. 우아한 동작이었다.
나는 가운의 앞을 여미고 허리끈을 묶었다. 그리고 베란다로 다가가 커튼을 걷고 창을 닫았다. 칠흑같은 어둠이 창 너머에 도사리고 있었다. 작은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 가벼운 현기증이 일어 베란다 창에 손을 짚었다. 손바닥을 타고 한기가 뱀처럼 팔을 타고 기어 올라왔다.
그는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흐릿한 연기가 그와 나 사이의 공기를 휘감았다. 연기 사이로 그의 눈이 보였다. 그의 눈은 창 너머를 향해 있었다. 어둠을 응시하는 그의 두 눈은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도 분명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눈이다. 조금 전까지 내 가슴을, 내 배를, 내 엉덩이를, 내 그곳을 샅샅이 핥았던 그 눈이다. 나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나는 가벼운 수치심을 느끼며 옷깃을 다시 다듬어 가슴선을 가렸다.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고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투명한 눈동자 아래로 열락에 달뜬 내 두 눈이 비쳤다.
- 이제 그만 가지. - 벌써?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고개를 침대로 돌렸다.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부끄러웠다. 가볍게 웃어주기라도 하면 좋았을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왼팔을 가슴께까지 끌어올리고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손목에 찬 시계를 톡톡 두들겼다. 나는 침대 곁으로 다가가 보조 테이블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엄지 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자 액정화면에 푸른 하늘을 찍은 사진을 배경으로 여러 아이콘과 문자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
- 열두 시 반 밖에 안 됐잖아.
나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그가 굳이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베란다 창 쪽으로 향했다. 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검붉은 카펫 위에 널부러져 있던 팬티를 집어 들었다. 팬티는 아직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젖은 팬티는 내버려두고 스커트부터 찾아 발목에 걸었다. 왼손으로 스커트를 나이트가운 아래로 끌어올리면서 오른손으로 브래지어를 집었다. 그는 베란다 창에 등을 기대고 왼쪽 옆구리에 브래지어를 끼고 스커트를 바로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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