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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 후 (Beyond Armageddon) - 아서 클라크 외 13명 (★★★)
Book/Review |
2007/10/0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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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날 그 후 (Beyond Armageddon, 1985) 아서 클라크 외 13인 저 / 김성은 역 1985년에 엮인 S.F. 단편집. 이 책에 실린 SF 단편들은 beyond armageddon 이라는 책 제목대로 대규모 핵 전쟁이 벌어진 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공통점과 '바빌론의 물가에서' 한 편을 제외하고는 냉전이 한창이던 20세기 중반에 쓰여졌다는 접점이 있다.
책에 수록된 단편 대다수가 3~40년 전에 쓰여진 것들인지라 지금 읽기에는 다소 철이 지난 감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런 부분의 괴리감이 크진 않더라. 오히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가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전쟁 등의 변수로 인한 체제 붕괴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던 시대에 나온 작품들이라 그런지, 핵 전쟁이 가져올 사회ㆍ정치적 구조의 변화나 핵 무기 사용의 여파로 인한 환경 변화 아래에서 달라지게 될 삶의 모습을 아주 예리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요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단편 절반 정도를 읽고 나면 다소 지루한 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대다수의 작품들이 유사한 소재를 엇비슷한 분위기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몇몇 단편들이 그렇게 재미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보면 이 단편집을 엮은 사람들이 단순히 재미있는 글보다는 가치 있는 메시지나 이념을 담고 있는 단편을 모아 담으려고 노력한 듯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 예를 들자면 J.G.벨러드가 쓴 '터미널 해변'의 존재라던가, 서로 대구를 이루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두 단편의 배치 같은 것들 - 뭐, 애초에 엮은 이의 의도 자체가 그런 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 쪽 분야 문학의 불모지랄 수 있는 한국에서, 그것도 발표된지 수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출판할 만한 S.F. 선집이 될 수 있었던 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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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수록된 단편들에 대한 단평. 순서는 책에 실린 순서 그대로. 스포일러 약간 있음.
1. 세상을 파는 가게 - 로버트 셰클리 (1959) 평행 우주 이론. 전쟁 전을 그리워 하는 남자.
2. 거대한 섬광 - 노먼 스핀래드 (1969) 심리 조정. 음모 이론. 이런 이야기를 볼 때 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영상과 음향 효과를 통해서 사람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고 특정한 행동을 강제시키는 것이 정말 가능한 걸까? 어쨌든 평이.
3. 현대판 롯 - 워드 무어 (1953) / Good!! 핵전쟁이 시작되고 생존할 곳을 찾아떠나는 자칭 '선견지명' 가부장과 그의 가족들의 도시 탈출기. 급박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시종일관 가족들과 아웅다웅 다투는 주인공의 반응과 마지막으로 그가 취하는 행동이 볼거리. 활까지 준비한 주인공은 진짜 대박이다. -_-;;
4. 바퀴 - 존 윈덤 (1952) 종말 이후 과학기술 자체를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결국 바퀴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다. 과학기술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선대 사람들의 어리석음. 눈이 멀어 진정으로 두려워 해야 할 주체조차 바르게 보지 못하는 후대 사람들의 어리석음.
5. 터미널 해변 - J.G. 밸러드 (1964) 3차 세계대전 이후 교통사고로 처와 자식을 잃은 남자가 버려진 핵실험시설이 자리한 무인도를 찾는다. 가장 이질적인 단편으로 SF라기보다 핵전쟁에 대한 썰을 풀어놓는 초현실주의 철학 소설같다. 보다가 중간에 졸아서 그런지, 다 읽고 난 지금도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프랑스 예술영화를 연상시키는 단편.
6. 내일의 아이들 - 폴 앤더슨 (1947) 핵 전쟁 후 사실상 문명이 괴멸되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아 인류의 재건을 꿈꾸지만 방사능 오염으로 인해 돌연변이 아이들이 태어난다는 암울한 내용의 단편. 결국 돌연변이를 받아들이냐 마냐 하는 요즘 세상에는 뻔하디 뻔한 X-MEN스러운 이야기로 귀결된다. 작가가 주인공의 입을 빌려 내놓는 대답이 이해는 되지만 별 공감은 안되고. 어쨌거나 핵심은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소리겠지.
7. 누가 상속자인가 - 로버트 애버나시 (1954) 핵전쟁 이후 미국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소련 마을에 공산주의사 소련 간부가 나타난다. 이념의 충돌이 빚는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문명을 부정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유목민의 묘사가 볼거리. 인간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오히려 인간을 옭아매는 역설적인 상황이지만, 더 이상 효용이 없다고 해서 평생을 함께한 가치관을 쉽게 버릴 수 없는 등장인물의 마음에도 공감이 간다.
8. 바빌론의 물가에서 - 스티븐 빈센트 베네 (1937) 원자폭탄이 개발되기도 전에 쓰여진, 핵 전쟁으로 인한 문명의 종말 이후를 그리는 소설. 문명을 잃고 과거로 회귀한 인간이 전쟁 전 인간의 문명이 남아있는 도시를 탐험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과학의 부산물을 마법이라 표현하는데, 그러고보면 우리도 정말 마법 같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싶다. 손가락을 몇 번 까딱거리면 지구 반대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9. 부드러운 비가 올거야 - 레이 브래드버리 (1950) / Good!!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프로그램대로 인간을 위해 움직이는 자동화된 집. 홈 오토메이션 시스템에 대한 묘사를 보고 있으면 이게 반세기 전에 쓴 작품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 청소하는 쥐새끼 로봇은 좀 웃겼지만;
10. 시카고 어비스 역으로 - 레이 브래드버리 (1963) 앞의 단편과 대구를 이루는 작품. 문명을 잃은 인간들이 과거를 향수한다.
11. 루시퍼 - 로저 젤라즈니 (1964) 작가의 이름값에 비해서는 별로.. 결말부의 여운은 마음에 든다만.
12. 동쪽으로 출발 - 윌리엄 텐 (1958) 인디언이 백인을 지배하는 미대륙. 현실을 역전시킨 상황 설정이 아이러니한 즐거움을 준다.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들이 인디언의 박해를 피해 유럽대륙을 찾아 떠나는 결말이 단연 백미.
13. 성 재니스의 향연 - 마이클 스완익 (1980) / Good!! 예정된 결말을 반복하는 제니스의 향연은 핵전쟁이 남기고 간 아픔을 반추하는 동시에, 그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과 바람이 아닐까. 핵 전쟁 이후의 암울함이 가장 강하게 와닿는 단편.
14. 그대를 어찌 잊으리, 오 지구여... - 아서 클라크 (1951) 작가의 이름값에 비해서는 별로.. 2. 콜로니 사람들이 핵전쟁으로 멸망하는 지구를 바라보며 느꼈던 고뇌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
15. 소년과 개 - 할란 엘리슨 (1969) / Excellent!! 군계일학. 네뷸러 수상, 휴고 노미네이트라는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본 단편집 내에서 가장 빼어난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고보면 네뷸러나 휴고 수상한 작품들은 모두 재미있게 읽은 듯. 마지막 부분이 아주 아주 인상적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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