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최근에는 '피겨'라는 게 있어서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여자아이를 점토세공으로 사실적으로 만들거나 그것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더군요. 그런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어디가 좋으냐고 물으면 '다들 귀엽지, 고분고분하지, 게다가 떼도 쓰지 않잖아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소중하게 방을 장식하는 인형은 하나같이 얼굴은 커다란 어린애 얼굴인데 몸매는 유별나게 풍만해서 징그러워요. 어쩐지 슬프더군요. 얼굴은 어리고, 어린아이처럼 고분고분하게 말대답도 하지 않는데 몸은 어른스럽다는 것은 일본 남성이 옛날부터 갖고 있던 염원 같은 것이지 않습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바람은 경멸의 대상이 되었지만, 궁지에 몰린 남자들은 결국 외국에 나가서 발산한다든지 하고 있잖아요. 나는 그들에게서 그런 궁지에 몰린 일본 남성의 욕망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 사람들의 그건, 일종의 마스터베이션이잖아요. 다같이 난 이런 식으로 마스터베이션하고 있다고 서로 보여주는 셈이에요. 그리고 방 밖에 있는 여자들에게 '우리는 보다시피 다같이 마스터베이션하고 있으니까 너희들하고 놀 시간은 없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겁니다. 마스터베이션이란 혼자 해야 하는 일이잖습니까. 혼자서 자기 방에서 한다. 실컷 하고 나서 밖에 나와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시침 뚝 떼고 예쁜 여자아이와 음악이나 문학을 이야기한다, 나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그쪽이 훨씬 재미있지 않습니까? 집 안이고 밖이고 가리지 않고 자위해 봤자 조금도 재미있지 않잖아요. (후략)
- 온다 리쿠「삼월은 붉은 구렁을」34페이지에서 발췌
흥미로운 비유로군요. 피겨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은 관음증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피겨를 소유하는 것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혹은 동경하는 사람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것 아닐까요. 현실세계의 여자(혹은 남자)와는 달리 아무리 만지고 쳐다보더라도 불평 불만 따위가 있을리 없으니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고요.
이런 이야기는 현실 세계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에 자신감을 잃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혼자 무정물과 소통하면서 일방적인 단방향의 관계맺기를 통해 일종의 현실도피를 하는 거죠. 둘이서 해야 하는 행위를 혼자서 하고 만족을 얻는다. 말 그대로 마스터베이션이잖아요.
자위에 익숙해지면 문득 초조해집니다. 내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 홀로 고립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거든요. 불안과 초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와 유사한, 다른 누군가를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죠. 난 외톨이가 아니야, 속으로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그렇게 서로의 은밀함을, 마스터베이션을 공유합니다.
그래서 늘상 오타쿠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겁니다. 누구나 관음증은 있을 거에요.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적잖은 사람들이 혼자 은밀한 마스터베이션 - 굳이 성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 를 즐기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마스터베이션은 은밀한 행위입니다. 혼자 숨어서 실컷 즐기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절대 비밀. 시치미를 뚝 떼고서 사람들과 어울리죠.
그런데 오타쿠는 그 은밀함을 타인과 공유해요. 뚱뚱하고 떡진 머리에 여드름으로 우툴두툴한 얼굴이 보통 떠올리는 오타쿠의 표상이라지만, 모든 오타쿠들이 다 저렇게 생긴 것도 아니고, 저렇게 생겼다고 모두 오타쿠인 것도 아니며, 혹 저렇게 생긴 오타쿠가 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전적으로 저런 외모 때문에 오타쿠를 싫어하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마스터베이션을 공유한다는 그들의 특징에서 비롯되는 심리적인 거부감인 거죠.
오타쿠와 마니아의 경계도 이 부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니아도 오타쿠도 무엇인가 한 가지에 몹시 열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는 같아요. 그럼 둘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마니아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정은 오타쿠에게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니아는 그것을 지극히 좋아할 뿐, 거기에 광적으로 집착하지는 않아요.
마니아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사회와 이어진 끈을 놓지 않습니다. 즉, 가장 좋아하는 것보다 자신이 사회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이 더 높은 우선 순위를 갖는 거죠. 하지만 오타쿠는 다릅니다. 그들은 과감하게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를 벗어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 마스터베이션을 공유하는 사회에서 살아갑니다. 그게 마니아와 오타쿠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요.
오타쿠는 나쁜 걸까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일까요? 부정적인 존재일까요?
결국 대답은 상대적인 겁니다. 사람들이 성적소수자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오타쿠도 다수의 생각과 생활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요. (성적소수자가 오타쿠와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들은 오타쿠보다는 마니아에 가까운 존재겠지요.)
저도 제가 속해있는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탓에 오타쿠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 측은하긴 해요. 오타쿠가 타인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존재도 아닌데, 단지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 당하고,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걸 보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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