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 메츠 2선발 에르난데스가 부상자명단에 오르면서 박찬호는 뜻하지 않은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았습니다. 최근 마이너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맞아떨어진 주변 상황들 - 다른 마이너 에이스 투수가 어제 경기에 출전해서 오늘 나올 수 없는 등 - 덕분에 박찬호에게 기회가 주어진거죠.
박찬호에게는 정말 오늘 등판이 천금과도 같은 소중한 기회였을 겁니다. 오늘 경기에서 좋은 모습, 노련한 베테랑 투수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메츠 선발 경쟁에서 다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시작된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
2회까지는 아주 좋았습니다. 최소한의 공을 던져가며 삼자범퇴로 연이은 두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볼 배합, 컨트롤 모두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 보여준 낙차 큰 커브도 인상적이었고요. 박찬호도 침착한 모습으로 선수들을 하나하나 삼진 혹은 범타 처리해 나가는 모습에서 신뢰감도 느껴졌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상대 투수인 올슨과 함께 팽팽한 투수전으로 접어드는 양상이었죠.
문제는 3회였습니다. 1회부터 8명의 타자를 깔끔하게 잡아낸 박찬호는 9번타자이자 상대 투수인 올슨에게 안타를 허용합니다. 겉보기에는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무난한 안타였어요. 하지만 박찬호 선수는 이후 두 명의 타자를 스트레이트 볼 넷으로 진출시킵니다. 2사 만루의 위기에서 박찬호는 연이어 상대팀 3, 4, 5번 타자에게 안타를 내주며 5실점을 하고 맙니다. 이 안타 중 앞의 두 개는 수비 실책에 가까운 안타였습니다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심기일전하고 4회에 다시 마운드에 오른 박찬호는 아웃 하나 잡고 홈런 하나 맞고, 또 아웃 하나 잡고 홈런 하나 맞고,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했습니다. 스코어는 7:0. 박찬호는 4회말 자기 타순에 대타와 교체되며, 메츠 첫 메이저리그 선발 등판 경기를 마무리했습니다.
----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경기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박찬호의 선발 경기였고, 2이닝까지 빼어난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던 덕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결국 4이닝 7실점 7자책으로 마운드를 내려오네요.
참 여전합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면서 볼넷을 내주고 대량 실점하는 붕괴 패턴. 그리고 제구력 난조로 공이 가운데로 쏠리거나 높이 뜨면서 몇 차례의 홈런을 내주는 장면까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실책성 안타가 나오는 등 운이 없기도 했습니다만, 오늘 경기는 전형적인 박찬호의 '안 되는 경기', 그 자체였습니다.
아침부터 마음을 졸이며 박찬호 경기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박찬호는 이미 끝났다. 재기는 불가능하다. 최희섭처럼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밖에 없다. 그런 선수의 경기는 무엇하러 그렇게 열심히 챙겨보느냐, 고 말이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박찬호가 보여주는 모습이나 언론의 반응 등을 놓고 보면 메이저리그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기는 다소 버거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박찬호는 계속 노력하며, 선발투수 자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한국인 사상 최초로 선발투수 자리를 잡았을 때 국내 팬들이 붙여주었던 별명입니다. 그 이후로 많은 굴곡이 있었고, 부상, 슬럼프도 있었습니다만, 박찬호는 아직 코리안 특급의 꿈을 접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코리안 완행이라고 놀려도 선발을 고집하며 첫 메이저리거 선발투수로서의 모습을 지켜나가고 있죠.
박찬호가 아무리 두들겨 맞고, 맥 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도, 많은 팬들은 박찬호의 호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포볼과 제구력 난조로 스스로 위기상황을 만들고 그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모습이 워낙 많았던지라 보는 사람들 똥줄이 탄다고 해서 농담삼아 '똥줄야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바로 그 똥줄야구가 전해주었던 긴장과 흥분, 그리고 감동을 잊을 수가 없거든요.
새벽까지 박찬호 경기를 기다리느라 잠도 못 자고, 친구들과 함께 작은 티비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빨개진 눈으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삼진 하나, 안타 하나에 일희일비 하던 그 날. 저 하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 이상, 박찬호를 향한 응원은 계속 되지 않을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