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익은 천장. 형광등 불빛이 따갑게 눈을 자극한다.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머리 맡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든다.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내는 외부 액정에는 이런 저런 정보를 담고 있는 문자와 그림들이 떠올라 있다. 액정 왼쪽 부분에서 규칙적으로 점멸하는 3 이라는 숫자가 시선을 잡아 끈다.
부재중 전화 세통. 누구의 전화인지 궁금해 하기도 전에 핸드폰은 요란한 벨소리와 함께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외부 액정은 푸른 빛의 백라이트를 깜빡거리며 낯익은 이름을 띄웠다.
"여보세요?"
엄지손가락으로 폴더의 뚜껑을 밀어 올리며 핸드폰을 얼굴 옆으로 가져다 댄다. 피곤에 찌든 목소리가 내 목구멍을 통해 흘러나온다. 잠의 기색이 너무도 진하게 묻어 있는 음성에 새삼스레 놀라며 눈을 천천히 몇번 깜빡거렸다.
"어, 은정이구나, 무슨 일이야?"
여전히 탁하고 힘없는 목소리. 몸에 기운이 다 빠져 버린 듯한 사람의 목소리다. 대조적으로 활기찬 여성의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를 통해 따갑게 귓가를 자극한다. 그 목소리 뒤에는 사람이 많은 곳 특유의 웅성거림이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다. 나는 핸드폰을 쥐지 않은 손으로 눈을 비비며 상체를 천천히 일으켰다.
"응. 자다가 방금 일어났어. 전화벨 소리 때문에 깬 건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꿈이었나. 조금 전까지만해도 터져버릴 듯이 쿵쾅거리던 심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하다. 하지만 내가 쉬지 않고 달리던 어두운 밤거리의 풍경은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마치 손을 뻗으면 그 곳에 그 어둠이 다시 펼쳐질 것 처럼.
묘한 이질감. 그건 정말로 꿈이었을까.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에 쳐진 커튼을 걷었다. 밖은 여전히 어둡다. 일렬로 늘어선 가로등 불빛이 허공을 배회하는 유령 처럼 어둠 속에 붕 떠 있다. 꽤 늦은 시간인지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도 보이질 않는다. 거리를 눈으로 주욱 훑다가, 고장이 났는지 불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가로등 아래에서 시선이 멈췄다. 어렴풋이 보이는 흐릿한 형체.
"... 여보세요? 지금 내말 듣고 있는 거야?"
조금은 토라진 듯한 목소리가 핸드폰에서 흘러 나온다. 나는 그제서야 전화 통화에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 미안. 잠깐 바깥을 쳐다보느라. 무슨 얘기였지?"
"어휴, 정말. 그러니까 말야..."
한참 이어지는 은정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깜빡이던 가로등 아래에 보이던 형체는 어느 새인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무언가를 놓쳐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 2003년 2월 19일에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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