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동안 늦게 자 버릇했더니 잠이 안 와서 새벽녘에 맥주를 한 병 땄다. 얼마 전에 동네 이마트 탐방길에 사왔던 맥주, 두블. 레이블만 보고 듀벨이라고 읽었는데 벨기에에서는 두블이라고 읽는단다. 그 외 지역에서는 듀벨로 읽는 경우가 많다는데, 어쨌거나 맥주의 원산지인 벨기에 사람들의 아이덴티티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두블로 고고.
맥주 주제에 무려 알콜 함량이 8.5도나 된다. 보통 맥주 도수가 5도 안팎인 걸 감안하면 꽤나 높은 편. 흑맥주는 아닌데, 맛은 흑맥주랑 비슷하다. 보통 흑맥주보다 산뜻하고 고소한 맛이 나지만 끝맛은 꽤나 묵직하다.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키고 나면 8.5도 도수가 실감이 난다. 2년 가까이 술을 멀리하고 살았더니 겨우 한 모금에 시야가 알딸딸해진다. 푸-하!! 뜨거운 숨을 내뱉고 뻥이요를 한 움큼 집어먹는다. 예정되었던 안주인 뉴욕산 치즈 스틱은 어쩐지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아 찜찜하다.
길었던 군 생활 대충 끝나고 이제 좀 쉬나 했더니 군대보다 더 스트레스 받는 취업 준비가 나를 기다린다. 이 길을 선택한 게 내 자신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느냐마는, 이제 도저히 쉴 틈을 내기가 어려운 나이라는 것에 눈 앞이 조금은 아득해진다. 이제 현실에 적응할 나이가 된 것도 같은데 언제까지나 다른 곳으로 도피만 하고 싶어진다. 이 대목에서 김영하님이 지은 퀴즈쇼라는 소설의 주인공을 한 번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미안하지만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대를 위해 두블을 들고 건배! 그런데 당신, 그 아가씨와는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난 그 아가씨 마음에 들었는데.
아하. 주말엔 친척 누나가 결혼을 하고, 나는 또 취업 준비를 하고, 부대에 복귀하고, 전역하고, 또 다시 취업 준비를 하고. 고등학교 때는 정해져 있는 길을 걸어야 하는 학과는 싫다며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 못했던 길도 꽤나 매력적인 듯 보인다. 아, 이러면 로버트 프로스트 영감님의 가지 못한 길을 다시 한 번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지.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아무튼 이런 공감 200% 시를 지어주신 우리 로버트 프로스트 영감님을 위해 두블을 들고 건배!
아. 내일은 내일 또 다시 새로운 태양이 뜨겠지. 난 그 아래에서 들고 있던 신문을 하늘 높이 집어던지며 조선일보! 라고 외치던 말던. 이런 허세도 젊은이의 특권일지 몰라, 어쩌면.

キャシャ-ン Sins 第01話 (704x396 XviD).smi


아니, 맥주 리뷰와 일기를 섞다니...
이러면 카테고라이징이 안되자나?
이건 일기도 아니고 맥주 리뷰도 아녀.
이건 일기도 아니고 맥주 리뷰도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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